미라이 공업의 낯설고 엉뚱한 성공 경영

정리해고 횟수 ‘0’

육아휴직 ‘3년’

종신고용 보장

1년 평균 140일의 휴무

위에 나열한 항목들은 어른들의 환상을 채워 줄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혹은, 시류를 타고 한번쯤 시도했다가 막을 내린 안타까운 시도도 아닙니다. 현재도 열심히 공장이 돌아가고 있는 한 기업의 복리후생이자 경영방침입니다. 심지어 복지국가로 알려진 먼 북유럽 국가의 작은 회사의 이야기도 아니라는 사실이 놀라운데요. 바로 이웃나라 일본의 ‘미라이 공업(未来工業, MIRAI INDUSTRY CO.)’의 이야기입니다.


불필요한 혁신 Vs 이전에 없는 기술 개발, 차별화

: ‘직원의 즐거움이 곧 경영철학’ 창업주의 뚝심

​미라이 공업은 1965년 8월에 설립된 후 1991년, 나고야 증권 거래소 시장 제2부에 상장된 주식회사입니다. 사업 분야는 전기 자재와 배관 설비, 가스 설비 자재 제조 및 판매이며 직원수는 1,156명, 2017년 기준 매출은 336억엔(약 3,360원)으로 알려졌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일본 기업 중 하나로 보이는 미라이 공업은 4대 사장인 야마다 마사히로(山田雅裕)의 아버지인 창업주 ​야마다 아키오(山田昭男)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야마다 아키오가 미라이 공업을 창업한 이야기부터 예사롭지 않은데요. 자신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전선 제조회사에 10대의 나이로 소위 낙하산으로 들어갔던 그는 업무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사실상 짧은 기간의 영업 능력밖에 쌓지 못했던 야마다 아키오는 아버지 회사에서 쫓겨난 후 1965년, 다소 우발적으로 미라이 공업을 세우게 됩니다. 다만, 그의 아버지 눈에는 ‘쓸모없는 짓’으로 보였던 영업 능력이 기술 개발을 담당하던 시미즈 쇼하치라는 인물과의 만남으로 빛을 발합니다. 미라이 공업은 쉬지 않고 독특하고 기발한 상품을 출시하며 승승장구의 길을 걷습니다.

​1999년, 뇌경색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쓰러진 야마다 아키오는 사업 콤비였던 시미즈 쇼하치에게 사장 자리를 건넨 자유로이 강연을 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34년간 사장직을 수행한 그는 2008년 한국을 찾아 언론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비정규직과 관련한 이야기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90년대 10년간의 불황기 때 어느 대기업에서 정리해고된 사람이 2만명입니다. 결국 그 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졌습니다. 똑 같은 일에 절반의 월급, 보너스는 10분의 1인데 어찌 신이 나서 일을 하겠어요?” 야마다 아키오는 우수한 인재를 뽑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설령 조금 부족한 인재라도 ‘많은 생각’과 ‘동기 부여’를 주어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사장의 임무라고 설명했습니다.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보는 힘, 제품으로 이어지다.

: 미라이 공업의 경영전략

​미라이 공업은 창업주의 독특하고 한결 같은 경영철학에 따라 직원들의 의견이 중요시되고 아이디어 상품 출시로 이어지는 놀라운 연계성을 얻었습니다. 나사가 흐르지 않도록 나사 구멍을 일부러 거칠게 만든 스위치 박스를 시작으로 네모난 모양의 조인트 박스, 모두가 회색으로 생산하던 전깃줄을 흰색으로 바꿔 생산하는 등 무수한 신제품이 세상에 나오기에 이릅니다. 미라이 공업을 성장시킨 제품들은 일반 사원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들이 상당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창업주인 야마다 아키오의 전략이 잘 들어맞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 자체엔 노하우가 없다. 끝없이 생각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리더십이다. 어떡하면 직원이 감동받을지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 경영자가 할 일은 이것이 전부이다.

-야마다 아키오, 한겨레 인터뷰 中-


특히 줄만 흰색으로 바꾼 시도 하나로 높은 매출을 올렸던 전깃줄 제품에서 미라이 공업 특유의 경영철학이 엿보입니다. 대부분의 건물 천장은 흰색인데 이상하게도 전깃줄은 대부분이 회색으로 생산되었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단순하지만 엄청난 변화를 내포하는 아이디어의 힘이 제대로 발현된 사례입니다.

​엄청난 종류의 제품을 탄생시킨 미라이 공업은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7년에만 1만 8천여종을 판매했습니다. 그중에서 특허 상품이 9할 이상이었다는 점이 놀라움을 자아냅니다. 물론, 적지 않은 제품들이 라이벌 회사에 의해 카피되었지만, 소수의 상품만 취급만 취급하는 것이 아닌 미라이 공업에게는 큰 타격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아이디어는 계속해서 끊임없이 여러명에 의해 나오고 있기 때문이죠.

‘남과 다르게, 하지만 누구보다 자유롭게’

: 현실 속 유토피아를 만든 미라이 공업의 성공 비결

​혁신적인 제품을 쏟아내는 미라이 공업은 전 직원들이 새 제품을 구상하는 데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계적으로 아이디어를 쥐어짜내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의 미라이 공업은 존재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반대로 자꾸만 쉴 틈을 주려는 노력을 펼친 탓에 도입되었던 주 4일제 근무는 사원들의 반대로 자취를 감춘 감동 스토리까지 존재합니다.

​게다가 제조업임에도 불구하고 유니폼을 강요하지 않고, 근무 중 행동에 대한 사사로운 제재도 없다고 하는데요. 은근히 휴가를 통제하는 분위기나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녀야 하는 의무도 없어 그야말로 자유로운 분위기로 운영됩니다. 아직까지 상명하달식의 수직적인 분위기가 대부분인 일본임을 고려하면 미라이 공업은 독특함을 넘어 혁신적인 기업임에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마치 혁신의 아이콘인 ‘구글’을 떠올릴 만큼 한결같이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하는 미라이 공업의 4대 사장 야마다 마사히로는 창업주의 장남이지만, 단순히 혈연으로 가업을 물려받은 것은 아닙니다. 대학교 졸업 후 곧바로 입사하여 10년 넘게 영업 직무를 맡았는가 하면, 제조기획, 공장장 및 감사 등 현업에 충실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이후 자회사인 ‘진보 전기’의 사장으로 취임한 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다음에야 미라이 공업의 사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 역시 직원들을 한번도 꾸짖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고 하니, 아버지인 창업주의 정신이 그대로 깃든 인물인 듯하죠.



미라이 공업의 혁신은 성과에 대한 압박이 아닌, 직원 개개인이 자신의 하루를 값지게 생각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리더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유토피아로 보일 수 있는 근무환경은 미라이 공업에서는 이미 계속 이어진 현실인 셈입니다. 꿈같은 혁신을 꿈꾸는 리더라면, 조직 구성원들 역시 현실에서 꿈을 꿀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이것이 미라이 공업의 모토이자 성공 비결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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